귀국후기 #2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죄가 되는 세상’

귀국후기 #2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죄가 되는 세상’

 

유명한 일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체포된 독일의 나치전범들 중 이스라엘 공개 재판에 섰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수백만명을 죽음으로 몰아세웠던 그의 모습은 단순히 국가의 명령을 따랐던 그저 일개 국가 공무원의 모습과 흡사하였다는 것. 과연 그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바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다”, “나치즘의 광기로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 뿐이다” “아이히만은 이아고도 멕베스도 아니었고, 또한 리처드 3세처럼 악인임을 입증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그의 마음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떠한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보내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가끔은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매일매일 느낀다. 아침에 눈을 뜨고 계획을 세우고 남들과 똑같은 모나지 않은 일상을 보낸다는 것, 일을 하고 보수를 얻는다는 것,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라 생각하겠지만, 다시 한번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최선일까?

당연한 듯이 자동차를 끌고 출근하고 퇴근하면서 길이 막히고, 길이 막힌다고 불평하는 모습,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당연한 듯 에어컨과 보일러를 작동시키는 모습, 당연한 듯 자동차를 몰고 큰 쇼핑센터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 당연한 듯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배송을 받는 모습, 당연한 듯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시간을 보내는 모습, 당연한 듯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다시 다른 건물의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용무를 보러 가는 모습.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하루 하루 일상의 모습. 과연 무죄일까요?

우리는 이미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죄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그저 내 삶에 충실한 것 만으로는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그렇게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행동하세요.’ 행동은 생각의 결과이며 생각은 관찰에서 나온다. 내가 바뀌면 남도 바뀐다는 신념이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행동할 때 사회는 느리지만 점차 변화한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괴로울 수 밖에 없다. 우리 대부분은 주어진 편안한 익숙한 상황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동물적 습성이 있다. 괴롭고 힘들고 낯설고 두려운 상황에 자신과 내 가족을 내몰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 사회는 변화 없이는 유지하기 힘든 한계점을 지나버렸다. 너무나 소비적이며 지속가능하지 않은 그저 편리하고 빠르기만한 인간편향적 사회를 발전시켜온 결과물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모든 행동을 하나하나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으며, 나의 행동 하나하나의 끝자락에 어떤 사회적 연결고리가 있는지 생각해보아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무심코 내가 내린 커피 한잔의 끝자락에는 커피콩을 수집하는 파나마 미성년 어린이의 노동착취가 가려져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살얼음(?)같은 세상을 살기 위한 올바른 자세는 바로 생각을 하는 것이요. 더 좋은 것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나의 작은 행동과 결단 하나하나가 모일때 그리고 그것이 다시 당연한 듯 일상으로 자리 잡을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한 변화를 시작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